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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김밥을 말게 된 요알못 뉴요커의 이야기

by 뉴욕냥냥 2023.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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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리를 그다지 즐기지도, 잘하지도 못한다.

그저 적당히 먹을 수 있을 만한 정도로만 하며, 어려운 요리를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도 별로 없다.

이런 내가 뉴욕에 살게 된지 1년만에, 한국에서라면 생각지도 못했을 김밥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최근 들어 계속 한국에서 먹던 김밥이 먹고 싶었다.

특히, 어릴 때 운동회를 하던 날 엄마가 만들어 주었던 슴슴한 집김밥이 너무 먹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뉴욕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에는 일단 제대로된 한식집이 없다.

있더라도 치킨이나 비빔밥 정도만 파는 곳이 한 두개 있고, 제대로 된 한식을 먹으려면 한인타운까지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김밥 한 줄 먹자고 왕복 칠천원의 교통비를 내고 움직이기도 애매해서 몇 주를 그냥 참으며 보냈다.

 

그러다 도저히 참지 못하게 된 어느 주말, 남편을 이끌고 한인타운으로 내려가서 김밥을 찾아 헤매었다.

다행히 '푸드 갤러리 32'라는 한식 푸드코트에서 김밥과 떡볶이, 만두 등의 분식을 파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빈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한식을 찾는 사람들로 붐볐던 그 곳.

남편과 세트 A메뉴를 하나 시켜서 같이 나눠 먹었다.

택스와 팁을 포함하면 '참치김밥 한 줄과 떡볶이 한 컵'에 2만원이 넘는다.

물가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한국에서보다 너무 너무 비싼 가격.

그래도 한 달 넘게 참았다 먹은 김밥은 정말 눈물 나게 맛있었다. ㅠㅠ

 

하지만 매번 이 돈을 주고 김밥 한 줄 사먹기에는 너무하다 싶었다.

김밥 마는 거 까짓거 그냥 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즈음, 마침 시어머니께서 한국에 방문했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시동생 내외를 통해 김밥용 김과 김발 등등을 보내주셨다.

 

 

이제 직접 김밥을 말아볼 때가 되었다!

 

호기롭게 한인마트에서 김밥용 단무지도 사고, 오이도 자르고, 계란 지단도 부쳤다.

스팸은 없어서 코스트코에서 사뒀던 슬라이스 햄을 대신 넣기로 했다.

조금 남아 있던 시금치도 데쳐서 참기름과 간 마늘에 무쳤다.

밥에 참기름과 통깨 넣고 비벼서 모든 재료 준비 완료!

어릴 때 엄마가 김밥 쌀 때 어깨 너머로 구경하던 경험을 살려서 하나 하나 말아보기 시작했다.

 

오 이거 생각보다 할만한데?!

 

김발을 이용하니 옆구리 안 터지게 김밥을 잘 말 수 있었다. 신이 나서 김밥을 계속 말았다.

이 담백하고 단촐한 맛의 집김밥! 이 맛을 원했었지.

 

그리고는 깨달았다. 김밥 준비의 생명은 재료 양의 밸런스를 맞추는 일이라는 것을...

나중에는 단무지만 남아서 단무지를 잘게 썰어 마요네즈에 버무려서 김밥을 쌌다.

그래도 너무 너무 맛있었던, 직접 만든 김밥!

열심히 싸서 저녁으로 먹고 다음날 남편과 내 도시락으로도 싸고, 라면이랑도 먹고 아주 알차게 먹었다.

 

왜 이걸 이때까지 직접 시도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맛있으면서도 많이 어렵지 않았다.

다음에는 더욱 맛있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보카도나 연어 등을 넣어서 이색 김밥을 만들어 볼 계획도 세워 보았다.

 


 

뉴욕에 살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평생 김밥을 직접 말아볼 생각은 하지도 않았겠지.

처음에는 한국에 살았으면 그냥 아무 동네 김밥집만 가면 쉽게 사먹을 수 있을 것을 이렇게까지 고생하며 여기서 일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직접 김밥을 말아본 지금, 그나마 미국에 살아서 이 요알못이 이 정도 요리라도 할 수 있게끔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다 한식 요리 전문가 되는 거 아니야? 라는 주제 넘는 설레발도 쳐본다.

하지만 한국에 간다면 먹고 와야 할 음식들의 리스트도 동시에 점점 길어진다.

 

 

'귀찮음 vs 한식에 대한 그리움'의 밸런스 게임에서 날이 갈수록 후자가 승리하고 있는 요즘.

 

해외에 살다보니 가족들이나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과는 또 다른, 한국이라는 곳 자체에 대한 오묘한 향수가 찾아올 때가 있는데, 나는 아마 음식으로라도 그걸 풀고 싶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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