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갖가지 디저트로 유명한 맛집이 참 많다.
처음 몇 달간은 르뱅 쿠키, 크레이프 케이크, 도넛, 바나나 푸딩 등등 유명 디저트를 탐험하러 다녔다.
하지만 이런 것들도 한두번이지, 계속 먹다 보니 슬슬 질리기 시작했다.
특히 나는 한국에서도 약과나 떡, 단팥빵 같은 디저트를 더 좋아했던지라 할매 입맛이라고 놀림받기 일쑤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 달 전부터 한국식 단팥빵이 그렇게 먹고 싶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뉴욕에 살면서 파리바게트에 가는 것은 왠지 모르게 지는 느낌이 들어서, 그리고 온 지 1년도 안돼서 벌써 이러면 안된다는 혼자만의 어떤 이상한 기준 때문에 한인타운에 갈 때에도 파리바게트, 뚜레쥬르나 H마트에서 한국식 디저트를 사는 것은 지양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남편과 한인타운의 파리바게트를 지나게 되었는데 그날따라 희한하게 빵냄새에 이끌려 홀린 듯이 들어갔다.
한국식 빵이 가득했던 파리바게트...
그렇게 그리워했던 단팥빵을 발견하고는 나도 모르게 집어 들었다. 한국에 있을 때 자주 사먹었던 커피번도 하나 사고, 남편이 좋아하는 슈크림빵도 추가!
세 가지 빵 전부 한국 베이커리에만 있는 메뉴들!
역시 한국식 빵이 최고다. 조그마한 도넛 하나에 6달러씩 하는 다른 베이커리에 비하면 이 맛있는 단팥빵이 2.5달러라니 이렇게 은혜로운 제과점이 어디있는가!
내 입맛에는 이 단팥빵이 그 유명한 뉴욕치즈케익이나 매그놀리아 컵케익보다도 훨씬 훨씬 맛있다.
설탕을 때려부은 도넛에서는 느낄 수 없는, 팥 고명만의 담백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달콤함!
그리고 이 희한한 지점에서 실감하고야 말았다.
아, 나는 몇 달 잠깐 뉴욕에 놀러온 것이 아니구나. 여행하는 동안은 먹고 싶거나 불편한 것이 있어도 그 동안만 참으면 되지만, 나는 이 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 나가야 하는 거구나. (참 빨리도 깨달았다;;)
그리웠던 단팥빵을 먹어서 기쁘면서도 기분이 묘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제 더이상 컵케익 맛집, 도넛 맛집을 검색하지 않는다.
대신에 H마트에서 4조각에 만원짜리인 단호박팥시루떡을 집어 든다.
'할매 입맛으로 뉴욕에 살려면 돈 많이 벌어야겠구나.'를 오늘도 뼈저리게 느끼며, 할매 입맛 맞춤형 주말 브런치를 준비해 보았다.
"식혜가 있어야 할 것 같아."라고 말하는 남편을 보며, 우리는 둘 다 뉴요커 입맛인 척 했지만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구나 생각이 들어서 꺄르르 웃는다. 한 술 더 떠서 '기성품으로 나오는 식혜는 그 맛이 안 난다'는 남편의 말에 십분 동의하며 식혜 만들기 레시피를 검색해 본다.
세상에, 내가 마트에서 엿기름을 찾고 인도쌀로 식혜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불편하면서도 재미있는 해외살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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