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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의 취향

by 뉴욕냥냥 2022.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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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밀한 의미의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육고기의 맛있는 정도를 덜 느끼는 것 같고 (정확한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고기에 비해 고기가 아닌 식재료에 더 손이 가는 '채식선호자'인 셈이다. 

 

나는 채소 없이 고기 먹는 것을 싫어하고, 남편은 고기 없이 채소 먹는 것을 싫어한다. 때문에, 식당에서 음식을 시킬 때에는 채소류와 고기류를 모두 시키는 편이고, 이렇게 시켜 놓고 함께 먹으면 아주 아름답고 원만한 합의(?) 아래 식사가 이루어진다. 가령, 독일식 소시지 요리를 시키면 남편은 소시지를 더 많이 먹고, 나는 사우어크라스트 또는 감자를 더 많이 먹는다. 

 

미국에서 먹고 살면서 느낀, 한국과의 커다란 차이점 중 하나는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먹거리이다. 미국은 내가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채식주의자의 비율이 높다. 그래서인지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대체육이 굉장히 많고, 특히 놀랐던 것은 다름 아닌 유제품 코너이다. 

 

일반 우유만큼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식물성 우유 냉장고!

유당불내증으로 인해 일반 우유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과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아몬드 우유와 귀리우유 (오트밀크)가 가득하다. 심지어 일반 우유도 지방 함량에 따라 무지방 (0%), 저지방 (1%), 2%, 전유 (whole milk)로 분류가 되어 있다. 버터, 치즈, 크림 등의 유제품들도 모두 비건을 위한 제품들이 따로 있다. 

 

이 식물성 우유 칸이 너무나 신기해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집어든 오트밀크!

아! 이토록 낭만적으로 비건 제품을 설명한 글귀가 또 있을까.

 

귀리에 함유된 starch (녹말)은 결국 탄수화물, 다당류이기 때문에 쪼개면 결국은 이당류인 sugar (설탕)가 되고 따라서 이렇게 달달하고 고소한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단백질보다는 탄수화물 섭취량이 높아지게 된다. 비건들이 단백질 섭취를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 예쁜 글귀에 이끌려 나는 결국 이 오트밀크를 구매했다.

처음 먹어본 오트밀크는 두유에 물을 탄 밍숭한 맛이었다. 그냥 마시기에는 일반 우유에 비해 무언가 부족한 느낌. 하지만 이 오트밀크를 에스프레소에 부으니 정말 고소하고 맛있는 오트밀크라떼가 완성되었다!

일반 카페에서도 카페라떼를 시키면 어떤 우유를 넣어줄 지에 대해 꼭 물어본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오트밀크 또는 아몬드밀크를 선택한다. 꼭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그러고 보면 이 곳은 비건을 일종의 취향 차이 쯤으로 여기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 나라에 초코맛 우유, 딸기맛 우유, 바나나맛 우유가 있는 것처럼 다양한 취향에 맞게 다양한 재료의 우유들을 파는 것일 뿐.

 

 

음식점들도 마찬가지.

대부분의 음식점 메뉴판에는 알파벳 V (vegan)자 표시, 또는 나뭇잎 표식 등을 이용해 어떤 메뉴가 채식메뉴인지 표시되어 있다.

최근에 방문한 쉐이크쉑 (쉑쉑) 메뉴판에도 vegeterian 메뉴가 표기되어 있다.

쉑쉑버거의 유일한 비건 메뉴인 슈롬 버거 (shroom burger)는 채식주의자가 아닌 내 입맛에도 꽤나 맛있어서 쉑쉑을 방문하면 자주 시켜먹는 메뉴이다. 

 

슈롬 버거에는 고기 대신에 버섯 튀김이 들어가 있는데, 이 버섯 튀김 안에 치즈도 가득 담겨 있어서 고기 육즙의 풍미까지 따라 잡은 메뉴이다. 

 

그렇지만 이런 채식 메뉴들에는 맹점이 있다. 

고기를 대신하기 위한 단백질 식재료들 (두부, 콩, 버섯 등)을 보다 맛있게 먹으려면 필연적으로 지방이나 탄수화물을 많이 먹을 수밖에 없게 된다. 튀기거나 기름에 굽거나 드레싱을 하지 않고 그냥 먹으면 안되냐 하지만, 채식주의자들도 기호라는 게 있다. 채소 자체의 맛도 좋지만, 그 이상의 맛을 느낄 권리가 채식주의자들에게도 있다. 아마도 인류는 더욱 건강하고 맛있게 채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개발해낼 것이다. 

 

영양분 불균형의 이유로 채식이 덜 건강하다는 관념이 있는 반면, 채식주의자들 중에서도 동물 보호를 해야한다며 육식을 야만적이라 공격하는 극단주의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를 공격하지 말고, 그냥 취향의 차이라고 인정하면 어떨까.

취향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P.S. 그러나 우리 대부분 식단의 문제점은 채소/고기가 아니라 떡볶이일 것이다. 죽고 싶은 상황에서도 떡볶이는 먹고 싶다는 그 마성의 맛, 절대 못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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