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색

뉴요커들에게도 불금은 있다.

by 뉴욕냥냥 2022. 6. 26.
반응형

미국인들은 회식과 단체 술자리를 가지지 않는다 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하지만 금요일 늦은 오후부터 어퍼이스트사이드의 맥주집들은 동료들과 가벼운 술자리를 가지는 뉴요커들로 가득 차있다.

대부분의 펍 (pub)들이 4시 혹은 5시에서부터 6~7시 정도까지 해피아워 (Happy hour)로 할인된 가격에 술과 간단한 안주를 제공한다.

그래서 회식을 하는 금요일은 보통 동료들과 다함께 4~5시쯤 이른 퇴근을 한 후 왁자지껄 모여서 바로 펍으로 향한다.

 

하지만 미국인들의 회식은 한국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우선, 음식들을 거창하게 시키지 않는다. 딱 맥주 한 잔씩만 시킨다. 아주 가끔 안주 1~2개 정도 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맥주 한 잔씩만 놓고 한참을 떠든다. 그래도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이른 시간이기에 배가 고프진 않다. 오히려 낮술을 하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커다란 차이점은 회식을 마치는 시간이다.

뉴욕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동료들과 맥주집으로 가서 첫 회식을 하던 날, 한 명이 6시가 되자 '이제 배가 고파서 저녁식사를 하러 가야겠으니 그만 파하자.'라고 말했고, 모두들 오케이 하면서 회식을 마쳤다.

그리고 다른 회식 날은 한 명이 맥주를 마시다가 저녁식사 약속이 있어서 그만 가보겠다고 하며 먼저 자리를 떴고 다들 자연스럽게 배웅해 주었다. 

이 곳 사람들이 간단히 맥주를 마시는 회식과 저녁식사 약속을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것을 나는 그제서야 알았다.

 

하지만, 뉴요커들은 그 짧은 회식 시간을 정말 즐겁게 이야기하며 보낸다.

주말에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스몰토크에서부터 미국과 세계 정세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까지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나이와 직급에 따른 연장자에 대한 개념이 적다 보니, 나보다 10살이나 어린 친구와도, 그리고 나의 직속 상사와도 자유롭게 여러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워낙에 다양한 인종, 출신, 나이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사소한 이야깃거리라도 토론이 길어진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각자의 문화권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그리고 간혹 전혀 다른 문화권에 생뚱맞은 공통점이 있는 것에 대해 서로 신기해하다 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그리고는 "Have a good weekend!"라는 인사와 함께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여전히 해가 떠있는 저녁 7시에.

 

금요일 저녁의 회식을 한국에서는 '불타는 금요일'이라고 표현한다고 말하니, 다들 왜냐고 묻는다.

우리처럼 술에 취해 늦은 시간까지 모든 에너지를 불태우며 노는 회식이 아니다 보니 다들 이해가 안되는 표현인가 보다.

 

그래도 뉴욕 사람들은 그들만의 짧은 불금을 보낸다.

하지만 저녁식사는 가족과!

 

 

안주와 술을 그득하게 시켜놓고 1차, 2차, 3차까지 장시간 음주를 즐기던 한국에서의 회식이 가끔은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뉴욕의 물가를 생각해 보면, 그렇게 거나한 회식을 즐기면 나머지 일주일 내내 쫄쫄 굶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이 곳 사람들은 이 곳에 맞는 음주문화를 나름대로 발견한 것이 아닐까.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삼겹살에 소주를 먹으며 건배를 하고 2차, 3차까지 가서 12시에 파하는 회식을 다시 하게 되리라.

그 때가 되면, 맥주 한잔 시켜놓고 수다 떨며 5시에 시작해서 7시에 끝나는 뉴욕식 회식이 그리워지겠지.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