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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노화에 대한 사적인 저항_1_새로운 취향 찾기

by 뉴욕냥냥 2023.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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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서른세살을 넘으면 더이상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지 않는다는 글을 읽었다.

그러고보니 나도 어느 순간부터 내가 좋아하던 가수들의 노래 또는 귀에 익은 비슷한 풍의 노래들 위주로만 플레이리스트를 채우고 있었다. 그래도 최대한 다양하고 새로운 노래들을 많이 듣기 위해 한국에 있을 때에는 아예 몰랐었던 가수들을 찾아내어 노래들을 들어보고 있다. 

다행히 발전한 AI 기술의 도움으로, 마음에 드는 노래들을 몇 개 들었더니 알고리즘을 타고 내 취향에 맞는 새로운 노래들이 계속 튀어나온다. 

 

그래, 나는 아직 정서적 노화가 진행되지 않은 거야. 

기술의 발전이 제공해준 알량한 안심.

 

비슷한 음악 취향을 고수하고 있는 나에 반해, 결혼 전 나와 비슷한 인디 취향을 가졌던 남편은 작년부터 갑자기 한국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많이 듣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아마 남편이 듣는 라디오와 유튜브 채널들의 영향일 것이다.  

나는 이름조차 잘 모르는 아이돌들의 노래를 남편이 틀어놓을 때마다 "또 MZ 세대인척 한다."라고 말하지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날 놔두고 혼자 (취향만) 젊어지지 말란 말이야!" 가 아닐까.

 

 

한편, 나이가 들면서 입맛은 자연적으로 바뀌는 게 느껴진다.

2~3년 전만 해도 불닭볶음면이나 마라탕 같이 아주 매운 음식들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풀곤 했는데, 이제 더이상 그렇게 매운 음식들을 찾지 않는다. 대신 평양냉면이나 나물, 된장찌개 같이 속이 편하면서도 슴슴하고 담백한 음식들이 더욱 맛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에게는 한국 음식이 그 어떤 세계의 진귀한 음식들보다 맛있다는 것이다. 

뉴욕에는 전세계의 음식이 다 있으니 다 한 번씩 경험해보자고 남편과 이야기했지만, 다짐이 무색하게도 거의 집에서 한식을 해 먹게 된다. 

그리고 외식을 하더라도 결국 매번 가던 곳 (거의 아시안 음식들)에 가서 늘 먹던 음식만 시키게 된다.

이 또한 새로운 도전을 기피하고 안정을 추구하게 되는 '나이듦'의 특성 때문일까?  

 

그나마 블로그글을 쓰겠다는 어떤 자그마한 의무감 덕에 새롭고 신기한 곳을 많이 탐험해 보려 노력중이지만, 유명 맛집의 비싸고 예쁜 브런치 음식보다 집에서 야채 때려 넣고 고추장 뿌려 먹는 비빔밥이 훨씬 맛있게 느껴진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 때문이라고 한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비슷한 음식들을 먹으며 같은 장소에서 잠이 드는 일상이 계속되니 오늘과 내일이 크게 구별되어 기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일주일이 흘러가 있고, 한 달, 일 년도 훌쩍.

이런 도돌이표 같은 일상을 깨트릴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할 수록 시간을 꽉 채워 쓴 느낌이 들고, 언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갔나 라는 생각을 덜 할 수 있겠지.

 

안정을 추구할 것이냐, 정서적 젊음을 추구할 것이냐. 

 

 

다행히 (다행인가?), 내가 30여년간 살던 곳과 아주 동떨어진 뉴욕에서 일하며 살고 있으니 뭘하든 하나 하나 다 새로운 경험이긴 하다.  

하지만 직업의 불안정, 주거의 불안정은 언젠가는 해소해야 할테니, 일상 속에서 자잘하게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해 보려 한다. 

늘 먹던 것, 늘 듣던 것을 택하려는 관성을 거부하고 새로운 취향을 가져보는 것.

나이듦에 저항해보려는, 정신만이라도 계속 어리고 싶은 혼자만의 사소한 항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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