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살면서 매일 같이 보는 이스트리버와 맨해튼의 전경에 이제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는데, 매번 나를 관광객 모드로 만들어주는 공간이 있다.
뉴욕을 방문하는 여행객이라면 모두가 반드시 방문하는 그 곳, 브루클린.
미드 '가십걸'에서 그려진 미국인들의 브루클린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도시였고, 영화 '브루클린'에서의 느낌은 그리운 고향을 떠나 도전과 모험을 위해 이주해 온 이민자 젊은이들의 애환이 담긴 도시였다.
그리고, 뉴욕에 사는 나에게도 아직까지 방문할 때마다 느낌이 다른, 참 신기한 곳.
맑은 여름 초저녁에 방문한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렇게 멋진 사진을 건졌다.
덤보는 갈 때마다 늘 '이게 대체 뭐라고 그렇게들 사진을 찍어댄담.' 생각하지만, 셔터를 누를 때마다 이렇게 너무 멋있는 사진이 나와서 놀라운 곳이다. 세계의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사진을 찍어대는 이유가 납득되는 곳.
덕분에 나도 이 곳에서만큼은 사람들과 차들을 피해 연신 사진을 찍어대는 한 명의 관광객이 된다.
덤보를 벗어나 강가로 걸어가면 맨해튼 건물뷰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그래서인지 유독 브루클린의 강가 근처에서 웨딩 사진을 찍는 커플이 많이 보인다.
저들은 관광을 와서 웨딩 촬영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 곳에 사는 현지인들일까?
구분하기 힘들다.
브루클린 브릿지와 덤보 근처의 사람들은 현지인, 관광객 할 것 없이 모두 신나 보이고 들떠 있기 때문.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신나 보이는 곳은 바로 브루클린 브릿지 위이다.
개인적으로는 브루클린에서 맨해튼으로 넘어가는 방향의 뷰가 훨씬 예쁘다고 생각한다.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며, 특히 석양이 질 무렵 아름답게 노을지는 웨스트 쪽의 하늘을 바라보며 브루클린 브릿지 위에 서 있으면, '아 이게 바로 뉴욕의 낭만이구나.' 라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곤 한다.
즐겨 보던 유튜브 채널 '유랑쓰'의 부부가 이 브루클린 브릿지를 건너며 갑자기 눈물이 터진 장면이 있었는데,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너무 깊이 공감이 되었다.
풍경이 너무 멋있거나 아름다워서도 아니고, 이 좋은 곳에 너무 늦게 왔다는 아쉬움도 아니다.
현실에서 붕 떨어져 있는 것만 같은 이 공간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광활한 맨해튼의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묘한 벅참과 회한이 들고, 내가 아둥바둥 살고 있는 인생이 덧없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 다리 위에서만큼은 그 어떤 걱정과 근심도 잊고, 이 곳에 서 있는 나 자신만을 오롯이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브루클린 브릿지 위에서 사진을 안 찍고 그냥 걸어가는 날이 언젠가 올까?
그렇다면 아마도 이 곳이 편해져서가 아니라, 감정이 메말라서이리라.
언제고 다시금 나를 설레게 만들어 주는 이 곳.
낯설지 않지만 익숙해지지도 않는 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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